어제 했던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추성훈 선수 편이었는데, 추 선수가 일본에 귀화한 것에 대해 물어보는 내용이 문제이다. 100년이나 지켜온 국적을 한국생활 3년 만에 버린 것에 대한 질문이 그 논란의 대상이다.
나는 국적에 대한 책임론을 내세우는 사람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조국이라는 것의 국적을 버리는 것에 민감하다면 그럴 수도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무관심하다는 말이 아니라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그 국적을 가지고 버리는 것에 가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따져본다는 것이다. 추성훈(Yoshihiro Akiyama, 秋山成勳) 선수는 분명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자란 일본의 한국인이었다. 말하자면 정체성의 논란이 일어날 만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주변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모두 일본인이다. 자신과 부모님은 국적만 한국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한국 국적에 자부심을 가질까, 게다가 그는 한국 국적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한국인으로 대접받지 못 했다. 나 같아도 가치 없는 국적을 계속 유지해 나갈 이유가 없었다.
재일동포에게 너무 책임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좋지 않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된 것이고, 원한다면 누구나 다 귀화라는 과정을 통해 완전한 일본인으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국적이라는 것을 버릴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개인이 무언가 책임을 가져야할 위치와 가치가 있는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앞으로 그 국적으로 인해 가지게 될 손해보다 내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면 아무리 차별을 받고 자신의 고향, 친구들에게 같은 애국가를 부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도 국적을 견지할만한 이유가 된다고 본다. 그 문제는 비단 그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호동의 언행이 지나치거나 무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도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심 때문에 조국을 버렸다는 오명을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추 선수는 대답이 아닌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에게 조국은 문서 따위로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그에 대한 가장 타당한 변명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느니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는 그런 교과서적인 대답은 오히려 구차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추성훈은 대답을 잘 했다. 일장기와 태극기의 중간을 바라봤다는 그의 금메달 후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그의 대답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허나 많은 재일교포들에게는 가슴 찡한 대답일 것 같다. 내 핏줄의 고향과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고향,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조르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할 때 누구를 따라가겠냐는 고문일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와 어머니 중 한명을 따라가야 하니 고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다. 재일교포에게 이런 질문은 아마 그런 종류의 질문이다.
특히나 운동선수들은 이러한 가치관의 충돌이 심한 것 같다. 내 능력에 맞는 대우와 차별을 피하고자 내 조상의 국적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손해를 감수하고 명예로운 한국인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허나 지금 많은 사람들은 후자보다는 전자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그 사람들에게 더 이상 조국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 된다. 눈에 보이지도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런 국적 따위가 더 이상 굴레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에 환호를 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조상, 내 부모가 물려준 조국이라는 것에 더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 할 수도 있다. 지금 추성훈 선수가 대표적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국적을 버리고 더 큰 스타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조국을 버린 재일교포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아도 한국인 앞에서 그는 어느 순간만큼은 당당하지 못 할 수 있다. 마치 무릎팍도사 강호동 앞에서처럼 말이다.
나는 국적으로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국적이 그 사람을 대표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피부색깔, 눈동자색이 대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 국적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랜덤으로 결정되지만 결국 어떤 국적으로 생을 살다 마감 하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범위로 보면 결국 귀화문제는 추성훈 개인의 문제에 불과했다. 조상과 조국에 대한 명예보다는 개인의 꿈과 그 자신의 가치가 중요했던 사람이다. 스타로서의 책임론 보다는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채 평범하게 운동선수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조금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에게 책임을 논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원정출산을 하는 산모들, 미국인 자식을 데리고 사는 고위층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강호동이 무릎팍도사를 앞으로 30년간 계속 할 수 있다면 이 사람들에게도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관심과 추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추성훈에게 섭섭함과 괘씸함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단순히 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으로 귀화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국적에 대한 책임론을 내세우는 사람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조국이라는 것의 국적을 버리는 것에 민감하다면 그럴 수도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무관심하다는 말이 아니라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그 국적을 가지고 버리는 것에 가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따져본다는 것이다. 추성훈(Yoshihiro Akiyama, 秋山成勳) 선수는 분명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자란 일본의 한국인이었다. 말하자면 정체성의 논란이 일어날 만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주변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모두 일본인이다. 자신과 부모님은 국적만 한국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한국 국적에 자부심을 가질까, 게다가 그는 한국 국적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한국인으로 대접받지 못 했다. 나 같아도 가치 없는 국적을 계속 유지해 나갈 이유가 없었다.
재일동포에게 너무 책임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좋지 않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된 것이고, 원한다면 누구나 다 귀화라는 과정을 통해 완전한 일본인으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국적이라는 것을 버릴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개인이 무언가 책임을 가져야할 위치와 가치가 있는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앞으로 그 국적으로 인해 가지게 될 손해보다 내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면 아무리 차별을 받고 자신의 고향, 친구들에게 같은 애국가를 부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도 국적을 견지할만한 이유가 된다고 본다. 그 문제는 비단 그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호동의 언행이 지나치거나 무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도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심 때문에 조국을 버렸다는 오명을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추 선수는 대답이 아닌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에게 조국은 문서 따위로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그에 대한 가장 타당한 변명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느니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는 그런 교과서적인 대답은 오히려 구차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추성훈은 대답을 잘 했다. 일장기와 태극기의 중간을 바라봤다는 그의 금메달 후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그의 대답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허나 많은 재일교포들에게는 가슴 찡한 대답일 것 같다. 내 핏줄의 고향과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고향,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조르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할 때 누구를 따라가겠냐는 고문일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와 어머니 중 한명을 따라가야 하니 고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다. 재일교포에게 이런 질문은 아마 그런 종류의 질문이다.
특히나 운동선수들은 이러한 가치관의 충돌이 심한 것 같다. 내 능력에 맞는 대우와 차별을 피하고자 내 조상의 국적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손해를 감수하고 명예로운 한국인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허나 지금 많은 사람들은 후자보다는 전자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그 사람들에게 더 이상 조국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 된다. 눈에 보이지도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런 국적 따위가 더 이상 굴레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에 환호를 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조상, 내 부모가 물려준 조국이라는 것에 더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 할 수도 있다. 지금 추성훈 선수가 대표적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국적을 버리고 더 큰 스타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조국을 버린 재일교포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아도 한국인 앞에서 그는 어느 순간만큼은 당당하지 못 할 수 있다. 마치 무릎팍도사 강호동 앞에서처럼 말이다.
나는 국적으로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국적이 그 사람을 대표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피부색깔, 눈동자색이 대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 국적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랜덤으로 결정되지만 결국 어떤 국적으로 생을 살다 마감 하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범위로 보면 결국 귀화문제는 추성훈 개인의 문제에 불과했다. 조상과 조국에 대한 명예보다는 개인의 꿈과 그 자신의 가치가 중요했던 사람이다. 스타로서의 책임론 보다는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채 평범하게 운동선수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조금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에게 책임을 논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원정출산을 하는 산모들, 미국인 자식을 데리고 사는 고위층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강호동이 무릎팍도사를 앞으로 30년간 계속 할 수 있다면 이 사람들에게도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관심과 추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추성훈에게 섭섭함과 괘씸함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단순히 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으로 귀화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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