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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오늘 실시간 검색어를 보니 '강의석'이 올라와 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눌러보니 이번엔 촛불집회 진압에 동원된 전 의경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다 같이 헌법 소원 등을 이용해 육군으로 재배치를 요구하자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전 의경들의 촛불집회 진압에 동원된 것이 헌법에 나와 있는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고... 강의석... 또 시작이구나.

2004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25살만 넘으면 인맥과 학벌로 서울을 휘젓고 다닐 거고... 10년 후엔 정치하겠다고 설치고 다닐 테고... 인물 하나 나오겠구나.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을 살살 꼬셔서 자신의 이력에 이용하려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애들은 결국엔 더러운 정치인으로 전락하고 말거라고 생각한다. 강씨의 주장과 이제까지의 것들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하거나 '미친놈' 취급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옳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종교문제로 떠들썩하게 해 서울대에 들어갔으면 1차 목표 달성, 대학에 들어가서 한 행동거지로 나 아직 안 죽었다는 표시와 함께 열정과 꿈을 찾는 중인 청춘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성공,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력을 만들기 위해 촛불집회를 이용하는 구나... 그럼 전 의경들이 얼씨구나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머리가 좋은 건 인정하겠는데, 노력이 부족하면 더 노력하지 않고 자꾸 주변사람들과 입을 열고 걸려드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싫다.


2.
난 가끔 이런 애들을 보면,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까 궁금하다. 사람은 성장하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더럽고 추잡한 환경에서 자라면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결국 그 아이도 더럽고 추잡한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통념이 있다. 그리고 그런 관념을 타당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많다. 그래서 얼마 전 기사를 보면서 이 사람도 혹시 이런 부류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무리 천재라도 자폐성향이 있으면 이 사람은 자폐아인거고, 아무리 유명한 예술인이라도 사생활이 지저분하면 이 사람은 그냥 지저분한 사람인거다. 공자가 아무리 출생부터 환경이 안 좋았으나 성인이 되었다고 주장해도, 우리는 공자의 남겨진 것만 보고 추앙하는 것일 뿐 그 사람을 다 알지는 못한다. 사람으로서는 '꽝'이었고 그냥 이 사람의 '말'만 청산유수에 성언이었을 수도 있다. 현존의 인류가 70억이고 이 중에 공자가 한명 더 나온다고 해도 이 사람은 결국 최소 70억분의 1의 확률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일 뿐, 70억 명 중에 제일 위대한 사람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과로서만 그 사람을 칭찬해야지 성과를 보고 사람 전체를 평가하고 칭찬하지는 말자. 그러니까 정치인을 뽑을 때 큰 기대를 하면서 뽑으면 안 된다. 그 놈이 그 놈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중에 내가 사는 곳에 저 강씨가 후보로 나와도 저 사람을 찍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저 사람의 성과는 오로지 저 사람만을 위해서 존재해왔으니까. 이번 일만 해도 우리나라는 군대가 없어질 수도 없고 모병대원으로 구성이 될 수도 없는 구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것 같다. 이걸 시작으로 하자는 말도 결국 자신이 나서서 정치인이 되어 바꾸겠으니 나중에 찍어달라는 말로 들린다.

법원에 '무엇'을 하는 것으로 제발 사회에 이슈 좀 그만 일으켜라. 나는 네가 이러는 게 싫더라. 사회에 왜 그렇게 불만이 많니? 복무 전환을 한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이계덕이나 강의석이나 다른 게 뭐야, 도대체.


#2

전경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의경은 지원제이면서 왜 전경은 ‘착출’인건가, 그렇다면 전경은 지원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고, 그럼에도 착출로써 그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며 또 그 말은 없앨 수도 없는 것이란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전경을 유급 학교로 만들면 어떨까? 지금 전경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대신 진짜 경찰이 진압하는 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전경대원들은 군 복무를 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사람들이지 시위 진압이나 하고 행정기관의 높으신 분들과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군인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당신들 국가 공무원들을 지키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군대의 착출제도는 없애야 한다. 진압은 돈을 받고 일 하는 직업인 경찰이 하는 것이지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에 들어간 전투경찰들이 하는 게 아니다. 누가 누구를 지키는 것인가! 시위를 진압하면서, 죽창과 돌멩이로 돌격하는 애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폭력집단이다. 이들은 당연히 무장한 경찰이 진압해야 한다. 촛불집회에 왜 전경들이 동원되야 하는가, 이들이 난폭한 행동을 하면 무장경찰을 내보내야지 왜 군인들인 전투경찰을 내보내는 가, 상식적으로 누가 누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2MB의 말대로 공무원은 국민의 노예이고, 전경은 이 노예의 노예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노예 수장인 2MB에게 너의 노예를 풀어주라고 명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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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민주화와 지금의 현실이 무엇이 다르냐.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보는 이의 눈을 가리는 민주화와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어 믿는 자만 믿는 민주화.' 그 지나간 때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민족과 민주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지나간 세대들의 욕심으로 지금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있고,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그 지나간 때의 젊은이들은 다시금 이들을 앞장세워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게 하고 있다. 물론 아주 상식적인'모두가 원하는 바람'을 같이 포장해서 외친다. 그러다 지나간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상식적인 것을 원하던 이들도 닮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먹고살기 바쁜 이들은 민주화가 무엇인지, 시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왜, 당장 식솔들의 입에 풀칠하는 게 더 급하기 때문에 먹고 살만한 이들의 행위에 동참할 수가 없다. 진짜서민들은 그런 곳에 갈 수가 없다. 선동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슬프다. 그리고 이렇기때문에 지금 말하는 민주라는 게 어쩌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정부는 멍청하다. 자신들의 행위에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반대편의 기가 확 살아났다. 진짜 멍청하다.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과 정책으로 그토록 싫어하는 반대편의 주장에 근거와 그들이 정부에 반대할 수 있는 일리 있는 핑계를 떳떳이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선동한다, 선동 당한다 외치면서 그들의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다. 오판과 오만으로 처리한 일에 당연히 틈은 많고 그로 인해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자업자득이다. 정권을 넘겨준 것도 반대편 그들의 자업자득이고, 이 정권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더군다나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편이 못해서 거저 얻게 된 것도 지키지 못하니 더 멍청한 것이다. 대선에 투표했던 국민들의 반이 지금 바보가 되었다. 찍어준 사람들을 멍청하고 우매한 인사들로 몰고 가는, 노비 한 놈 샀더니 주인행세 하며 재산 다 팔아먹는 상황이다. 

나 역시 정부가 싫다. 이 정부의 모든 정책이 맘에 들지 않아 반대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먹히는 말과 행동이 있고 먹힐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있다. 무엇이든지 어떤 목적과 성질을 가진 사람들의 집회이든지 간에 한국사회에서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시위는 결코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 이 사회는 결코 우리가 말하고 바라던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안의 또 다른 봉건사회인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우리는 지금 있는자들의 정치놀음에 투표라는 이름으로 힘을 보여준다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형식의 지주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소작농이거나 노예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우리가 투표로 만들어낸 그 한명은 우리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가 모시는 영주이거나 오년짜리 왕일뿐이다. 시민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그렇게 시위해봤자 정권이라는 것의 반대인 야당 정치인, 즉 또 다른 지주들의 권력다툼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치인이라는 지주들을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여긴 프랑스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당시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렇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지금은 2000년대이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봉건사회에 살고 있다.(프랑스의 시민혁명은 알고 보면 중산층의 권력투쟁에 일반시민들이 이용당한 사건이다. 다시말해 시간이 흘러 좋은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 과정과 원래 의도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시위 따위가 아닌 투표를 통해 자신의 뜻을 사회에 반영한다. 거리로 나가 선동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나라는 아직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 의견을 투표용지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거니와 시민들이 거리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쳐야 겨우 정부는 눈을 깜빡일 뿐이다. 이 나라는 시민이 시위 따위로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다. 아직도 봉건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민주라는 말은 꺼낼 수도, 꺼내지도 말아야 하는 단어다. 한 가지 발전한 점은 이제 무력시위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과격하게 대해야 답이 나오는 한국에서 그래도 시민의식은 많이 발전했다. 사회 구성원인 시민은 이토록 발전했는데 왜 아직도 나라의 지주들은 이토록 구시대적인 것일까 답답하다. 어째서 민주주의국가에서 봉건사회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 의문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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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미국 소고기 수입 건으로 인해 나라가 정말 많이 시끄럽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 할 수입결정과 그에 반대하는 시위인파들로 인해 블로그든, 신문이든 그들을 찍어내고 설명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담아내느라 아주 바쁘다.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지만, 시위라는 문화에 혼자 동참하기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혼자 모른 척 있기에는 너무 감정이 동요되고 울화가 치미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몇 주 전 사태를 잘 모르시는 부모님께 설명하고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말씀드리며 아버지와 논쟁을 펼치기도 했지만 저번 주부터 내가 바빠지면서 그런 이야기는 집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저번 휴일에 마트에 같아 가서는 벌써부터 내가 소고기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기행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우려는 우려로 끝나고 있다. 이미 정부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고 있는 단계에서,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와 블로그 포스트에서 보이는 집회 영상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힘없는 평범한 소시민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위라는 극단적인 참여로 나의 뜻을 밝히는 것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은 해결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 당장 오늘 벌어 오늘 먹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것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나는 일단 시위라면 질색을 하는 편이라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하는 시위라면 모를까 여타 시위와 비슷한 집회조차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는 예외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 집회에 혼자 갈수도 없지 않은가. 물론 그런 곳에 혼자 못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가자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가기엔 너무 쑥스러운 게 사실이다. 나도 이번 쇠고기 수입에는 반대라는 뜻을 밝히고 싶지만, 당장 그런 생각은 그냥 청견(聽見)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당연히 이번 시위와 집회는 정당한 것이다. 조금의 아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먹을거리의 안전을 해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조미료는 먹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이번 쇠고기도 그러한 것들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위의 주동자와 계획자들은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계획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시위와 집회를 하든지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정말 쇠고기 수입 계획을 중지하고 재협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원래 의도야 어떻든지 본래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 요구인 것이다.

시위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무조건적으로 정권에 반대하는 것도 그렇고 시위현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가 아닌 대운하 반대, 0교시 자율화 폐지와 자사고 설립 등에 관한 반대 목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내뿜는 행위 또한 그런 것이다. 신문 기사를 보면서 솔직히 웃겼다. 그 어린 학생들이 그 자리에 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 시위의 의도와 빗나가는 것이라 여겨진다. 주최한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고 그런 곳에서 학생들을 선동하고 무조건적인 이명박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인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 자주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온갖 혜택을 받고 가릴 것과 보여줄 것을 제한 받으며 살기 때문에 세상을 올바로 보기가 힘들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이런 시위참여가 바로 보이지 않고, 또한 그런 자리에서 그런 외침 등은 바로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이 이명박과 이 정권을 반대하는 것은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의견이다. 교육제도 이외는 모두 누군가를 통해 듣는 이야기일 뿐 정치인을 뽑기 위한 고민이라는 직접적인 경험이 없고, 책임지지 않는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중고등학생들의 정권반대는 말하자면 정치선동 의도에 이용당하며 정말 시위해야 하는 것에 대한 본질을 흐리는 것이 된다. 본질을 흐리는 시위로 인해 쇠고기 수입 반대의견에 대해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먹을 것을 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먹고 싶은 것과 먹기 싫은 것에 대한 욕구는 정당하다. 부모의 식습관 교육 이외에도 이미 최소한 10년 이상은 경험한 자주적인 식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직장생활 10년이면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로 불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중고등학생들도 쇠고기를 먹는 것에 있어서 전문가이며 이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이외의 것을 너무 많이 논하지는 말아야한다.

청문회를 보니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겠다. 답답한 인사들의 말이 더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왜 이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장관으로 모시고 살아야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말을 아껴야 꼬투리를 덜 잡히고 반론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는 일이 적어질 거라 생각한 게 눈에 보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먹는 것의 안전은 분명히 나라에서 지켜주어야 한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분열하게 되고 결국 국민들의 인심을 잃고 망하게 된다. 나라가 망하면 나라의 원수도 장관도 의미가 없어진다. 국민이 없는 나라라도 그 곳의 장관으로,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 궁금하다.

돌이켜 중고생들의 시위 참여를 보면, 법적으로 책임이라는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학생들조차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의 위험과 불안이라는 심리적 압박과 책임을 지게 되는 것에 유감이다. 왜 높으신 분들이 무시하는 학생들조차 거리로 나가게 되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선동을 당한 것이든지, 자주적인 참여든지 간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투표를 통한 권한의 위임을 통한 정당한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에, 책임질 행동을 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조차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는 행위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민주권이 있다고 떠들며 투표를 권유하는 나라에서 그 투표로 당선된 사람들이 당선되고 나니 그 뒤로는 국민들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는 상황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지켜주어야하는 존재에게까지 공포감을 주는 현실이, 그들을 각 도시의 광장으로 모이게 하는 현실이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일부 무조건적인 광우병 괴담은 분명 잘못 된 것이다. 무조건 적인 반미의 이념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잘못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위험요소가 다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30개월 이상의 소고기는 위험하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상식적으로 미국과 그러한 협상을 하고 그러한 체결을 맺은 데에는 누구나가 반대할 것임에 일체의 의심도 들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자국민이 먹지도 않은 고기와 부산물을 꼼꼼히 챙기며 검사하고, 자국민이 먹는 고기보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수출하겠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야 아직 수출에 있어 후진국적인 면모를 가지고 '최상품은 수출, 중하품은 내수'라는 풍토를 가지고 있지만, 자즙자족이 되는 경제대국의 나라에서 그러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소의 개월 수를 따지지 않고 수입한다는데, 미쳤다고 그네들이 먹는 것과 같은 20개월 미만의 소고기를 수출하고, 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나머지 부분을 깨끗이 발라내고 꼼꼼히 위험요소를 제거, 관리하여 팔겠냐는 것이다. 당연히 남아도는 30개월 이상의 위험요소가 내재된 물건을 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다. 같은 값이면 지금 창고에 가득히 쌓여있는 늙은 소고기와 먹지 않고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팔지 못하는 오래된 것을 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나는 미국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나머지 부분의 수입을 반대한다. 수입을 하더라도 2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을 수입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글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남기는 것은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지만 이렇게나마 나의 뜻을 남기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단계에서 제지하는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에 대해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요구하고 있다. 나는 안전한 쇠고기를 먹고 싶다. 이번 미국과의 협상을 파기하고 재협상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이 나라에 세금을 내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의 한국 시민으로서 지금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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